김해 읍성 북문은 김해시 동상동 314일대 4200㎡의 부지에 38㎡의 문루와 39m 옹성, 38m 주변 성곽 등으로 구성돼 있다.
김해 읍성은 고려말 조선 초기 남해안 일대에 수시로 침입한 왜구들의 노략질에 대비하고자 조선 세종(1443년)때 김해 시가지를 둘러싸고 동서남북 4대문을 갖춘 성곽으로 축조되어 조선 후기 고종(1895년) 때까지 약 450년 동안 존치되었으나 이후 거의 철거되어 없어지고 조선왕조 세종실록, 김해부내지도 등 고문헌에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하는 것이다.
김해 읍성은〈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 16년(1434) 석성(石城)으로 축조되었으며, 문종 원년(1451)에는 둘레 4,418척, 높이 13척, 여장(女墻 : 성위에 설치하는 구조물로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 931개소, 적대(敵臺 :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측면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곳) 20개소, 옹성(甕城 : 성문 보호를 위하여 외부에 설치한 이중성벽)을 갖춘 문 4개소, 냇물 한곳, 우물 28곳, 해자(垓子 : 성벽 주변의 인공하천)는 둘레 4,683척의 규모를 갖추었다고 한다.
김해시는 김해 읍성 4대문 중 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던 북문의 복원공사를 시작해 체성, 옹성, 문루, 여장 등을 갖춘 성곽으로 복원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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