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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김해 대성동 아폴로 자전거점 취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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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김해 대성동 아폴로 자전거점 취직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4.10.13 0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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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력 무학으로 기자가 되기까지<24>

필자가 강아지 팔아 서울로 가기 전까지 경남 함안군 칠북면에서 자전거 수리공으로 수년을 근무했기 때문에 자전거 수리 하나는 자신 있었다. 거기다 부산 동래 온천 철공소와 동래 철공소에서 전기용접과 산소용접을 배웠기 때문에 전공을 살려 용접을 하는 자전거점에 취직하고 싶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소망 속에 늘 갈망해온 그 대단했던 꿈인 용접시설을 갖춘 자전거점 취직을 하기 위해 자전거점 사장님께 사정사정하여 취직을 한 것이다.

필자가 취직한 자전거점은 대성동 김해여고 아래 사거리의 아폴로 자전거점으로 가게 크기가 5평 정도의 아주 작은 자전거점이었다.

필자가 이처럼 작은 자전거점에 취직을 하기 위해 노력한 이유는 이 자전거 점에서 산소용접을 전문으로 하고 이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전거 수리뿐만 아니라 산소용접을 잘하기 때문에 필자가 가지고 있는 기능을 다 살릴 수 있는 이런 자전거점이 좋아 사장님께 매달렸던 것이다.

지금 세대들은 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생소했던 당시 시대의 생활 풍경 중 화장실 문화 한 토막을 소개한다. 지금이야 모두 수세식 화장실이지만 40년 전만 해도 대부분 재래식으로 퍼세식이었다.

집집마다 화장실이 가득 차면 동사무소나 읍사무소에 수거신청을 하면 분뇨수거차량이 와서 호수로 흡입하여 깔끔하게 퍼간다.

물론 수거비는 주어야 했지만,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대충 눈대중으로 수거비를 책정하고 징수를 했다. 하지만 분뇨 푸는 자동차가 들어 갈 수 없는 골목 안 주택의 화장실은 수작업으로 퍼내야만 했다.

이처럼 사람이 직접 긴 막대기에 바가지를 부착하여 분뇨를 퍼서 대형기름 드럼통을 개조한 리어카 수거통에 담아 처리를 해 주기도 했는데 이 같은 일을 하는 분들과 리어카만 해도 김해 읍내 수십 대는 되었다.

이렇게 수거한 분뇨는 지금의 시민의 종각 아래 대형처리장에 부어 모아 두었다가 비가 오는 날 해반천으로 흘려보내기도 했다. 유독시리 해반천에만 잉어 붕어 등 큰 고기들이 바글바글했던 것은 아마도 이처럼 먹을 것이 많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청정한 해반천에 김해읍민들의 배설물을 모두 흘려보낸다는 것은 환경오염행위로 지금이야 턱도 없는 일이지만 당시는 그렇게 했다. 여하튼 이렇게 많은 분뇨수거 리어카를 만들고 수리까지 해주고 있던 곳이 아폴로 자전거점이었다.

이곳에서는 대형드럼통을 사 와서 분뇨 퍼 담는 입구와 배출시키는 출구를 산소용접기로 절단하고 입구 나발과 출구 개패 장치 등을 만들어 드럼통에 붙여 용접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완성된 수거통을 리어카에 올려 고정해주는 용접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어떤 분들은 개인 돈을 들여 내리막길 사고를 대비하여 브레이크 장치를 달기도 했다.

새 드럼통으로 제작을 할 때는 모르지만 사용하다가 훼손된 분뇨수거 리어카를 수리 할 때는 고약한 냄새가 나기도 했지만, 평소 하고 싶은 일이었고 용접하는 일이 좋았기 때문에 분뇨 냄새가 싫지만은 않았다.

사장님께서 아폴로 자전거점 바로 뒤쪽에 방 한 칸을 내주어 그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을 하게 되어 정들었던 논실의 800원짜리 달세 방을 비워주고 이사를 했다.

김해에 도착하여 정착한 곳도 대성동이요, 가장 먼저 일한 곳도 대성동 김해여고였다. 그리고 고구마장사를 한 곳도 대성동이었으며 이제 본업을 찾아 취직을 한 자전거점도 대성동이다. 한마디로 대성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다람쥐 채 바퀴처럼 대성동에서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가 오늘날까지 건강하게 김해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것도 객지 놈이라고 괄시하지 않고 따뜻하게 받아준 대성동 사람들의 고마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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