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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어느 날 찾아온 여고 졸업반 학생과의 만남과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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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유식의 허튼소리- 어느 날 찾아온 여고 졸업반 학생과의 만남과 이별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승인 2014.10.26 21: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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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학력 무학으로 기자가 되기까지<26>

아폴로 자전거 점이 김해여고 사거리에 있다 보니 자전거점 앞 도로가 여고생 통학길이 되었다.

여고생들이 오고 가며 자전거 수리를 하고 있는 필자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가기도 하고 어떤 학생들은 눈인사를 하고 가기도 했다. 잠시였지만 여고에서 잡일을 했었고 또 고구마 장사를 하면서 필자를 기억하는 학생이라 생각하고 필자도 인사에 답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경남 의령 고향 친구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저녁에 마치고 합성학교 옆에 있는 중화요리집인 평화식당으로 오라고 하여 약속시간에 그곳으로 갔다. 먼저 도착해 있던 친구의 안내를 받으며 방으로 들어서니 나선 아가씨가 두 명이나 앉아 있었다.

그중에 한 아가씨는 대성이발관 뒤편에 있는 새마을금고에 근무하는 아가씨고 또 한 아가씨는 새마을금고 아가씨의 친구인 김해여고 3학년 학생이라고 소개를 해 주었다. 금고 아가씨는 친구와 사귀는 사이라는 정도로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만나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여고생 역시 안면은 있었지만 잘 알지는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친구의 여자 친구인 금고 아가씨와 그 여고생은 친구 같은 언니 동생사이인데 어느 날 그 언니의 남자친구가 필자의 친구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딱 한 번만 만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저녁 자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도 차분해 보이고 참 예쁜 얼굴에 말씨도 교양이 있어 대화를 많이 했다. 우리는 그날 이후부터 수시로 만나 저녁도 먹고 금보극장으로 직행하여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언제나 계산은 그 학생이 먼저 하는 바람에 우리 일행이 지갑을 연 적은 별로 없었다.

언제가 친구 등 남녀 10명이 해운대 해수욕을 함께 갔는데 수영복을 입은 늘씬한 몸매 때문에 한층 더 아름다워 보이는 필자의 짝지인 그 여고생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저처럼 아름다운 아가씨가 별 볼 일 없는 자전거 빵꾸나 떼우는 내가 어디가 좋아서 저처럼 매달리며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넘실대는 파도 사이로 일고 있는 흰 거품처럼 언젠가는 모든 것을 잊고 사라지겠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필자가 밝히기만 하면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아는 김해의 중견 갑부 집의 무남독녀인 저 아가씨가 설사 필자를 죽자고 좋아한다고 해도 필자와는 격이 맞지 않는다.

무학자에다 땡전 한 푼 없는 자전거점 수리공에 불과한 객지 놈을 아가씨 부모님들이 받아 줄 일도 없을 것이고 잘 키운 하나뿐인 딸아이의 미래를 위해 그동안 온갖 정성을 다 쏟아온 부모님들의 가슴에 못 박는 일은 안 해야 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참 좋은 아가씨로 사랑이 무언지는 몰라도 안 보면 보고 싶기도 했던 것으로 보아 서로 꽤 정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놓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헤어지기 위한 잔머리를 굴리다가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하여 실행에 옮겼더니 적중했다.

필자의 꾀에 속은 그 아가씨가 필자에게 작은 실수를 하는 순간 필자가 화를 내면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그 아가씨의 얼굴에 손찌검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오늘 이것으로 끝이다. 앞으로 절대로 만나지 말자"는 말을 남기고 혼자 해운대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처음 만난 평화식당에서 그 아가씨와 만나 그동안 함께 찍었던 사진과 필자에게 보내온 편지를 모두 찢어버리면서 또다시 그 아가씨에게 모진 말을 했다.

그날 이후 수개월 동안 그 아가씨는 필자를 찾아오기도 하고 당구장이나 탁구장 입구에서 게임이 끝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화해를 요구했지만 필자는 단호했다. 얼마 후 필자의 가슴에 담겨 있던 그녀가 서울의 모 대학에 합격하여 서울로 갔다는 소식을 친구로부터 들은 것이 마지막 소식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러브스토리가 있고 난 이후 당시 조금 유행했던 노래가 있었는데 40년이 지난 아직까지 그 노래를 즐겨 부르고 있다.

가사 일부 "오로지 사랑하는 너를 위하여 가는 나를 잡지 마라 붙잡지 마라. 단 하나 사랑하는 너를 위하여 두 손을 마주 잡고 행복을 빌며 웃~으며 떠나 간~다. 웃~으며 떠나 간다 부디 안녕히~"

지금쯤 어느 하늘 아래 어느 곳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을 묘령의 그녀에게 그때 가슴 아프게 모질게 해서 미안하고 미안했다는 사과의 글을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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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實 2014-11-05 11:09:18
눈이 퉁퉁 붓도록 울지 않고 코만 휑 풀고 잘 살고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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