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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를 대표하는 9길(걷고 싶은 길)- 3길 봉하마을 대통령의 길(48.3km) 대통령과 함께 걷는 사색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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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를 대표하는 9길(걷고 싶은 길)- 3길 봉하마을 대통령의 길(48.3km) 대통령과 함께 걷는 사색의 숲
  • 특별 취재팀
  • 승인 2015.08.26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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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관광도시 김해`
 `김해를 대표하는 9경(볼거리), 9미(먹을거리),
 `9품(살거리), 9길(걷고 싶은 길)을 소개합니다.

대통령의 길, 봉화산 숲길이야기

“이 산이 저에겐 참 좋은 산인데요, 올라가면 낙동강이 보여요. 어릴 때 올라가면, 그게 제가 볼 수 있는 더 넓은 세계의 전부였다. 기차와 낙동강이 저의 눈에 보이는 가장, 뭐랄까… 꿈을 상징하는 것이었죠”

대통령의 길의 5가지 이야기

 
 
봉화산 : 김수로왕의 다섯째 아들이 지었다는 자은암이라는 암자가 있던 곳이라 ‘자은암’이라 불리기도 했다, 산 꼭데기인 사자바위에 오르면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 눈에 볼 수 있다.

부엉이 바위 : 예전부터 수리부엉이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부엉이바위라고 불리는 큰 바위. 지금도 가끔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곳이다.

마애불 : 통일신라 또는 고려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누워있는 마애불’이 있다. 원래는 바로 서 있었는데 언제인지 바위가 무너져 누워있다.

사자바위 : 대통령께서 봉화산이 왜 ‘낮지만 높은 산’이라고 하는지 직접 보여주며 설명해주시던 곳. 해발 140m에 불과하지만 24만평의 봉화들판가 마을, 멀리 화포천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봉수대 : 사자바위 바로 뒷터에 있으며 왜구들이 쳐들어오면 가덕도-녹산-분산으로 이어지는 봉화가 여기를 거쳐 밀양으로 건너갔던 곳이다.

노무현대통령의 연애이야기

“우리 부부는 경남 진영의 한 마을에서 같이 자랐다 고등학교때부터 마음에 두었던 그녀를 제대 후 고시공부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다. 처음엔 책도 빌려주고 받는 평범한 사시였다가 나중에는 읽은 책에 대해 얘기를 나눌 정도로 발전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지적이고 자존심 강한 여성을 좋아하는데 아내는 그런 저의 이상형에 딱 맞는 사람이다. 우린 소박하지만 남들이 흔히 갖기 어려운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있다.

늦 여름 밤하늘의 은하수는 너무 아름다운 밤이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라 덮고 잘 담요를 집에서 갖고 나왔다. 그때 양숙씨를 만나 그 둑길을 함께 걸었는데 그 모습을 누가 보았는지 “무현이랑 양숙이랑 담요를 갖고 다니며 연애한다”는 소문이 퍼져 변명 한 마디 못하고 망신만 당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2년 가까이 커피값 한 푼 안들이고 순전히 맨입으로 연애를 했지만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다. 아내에게 이런 저런 구박을 받다 보면 아내가 마귀할멈처럼 미워지다가도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저절로 미소가 지었다.

대통령을 탄생시킨 봉화산!

   
 
  ▲ 봉화산.  
 
봉화를 올리던 봉수대가 있어 봉화산이라 불린다. 사자 바위와 부엉이 바위, 부처님이 누워있는 마애불이 있고 능선 위에 대통령 서거 후 49제를 지냈던 정토원이 있다.

봉화산은 진영읍 본산리에 위치한 해발 140m높이의 산이다.

정상을 오르면 30리를 두루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북쪽 낙동강 넘어 밀양읍 하남읍 초동면 삼량진읍 서쪽으로는 창원시 동읍, 북면, 대산면, 동남쪽으로는 김해시 진영읍, 한림면, 진례면, 생리면 등 3개시 11개 읍면에 인접하고 있어 지역적으로 중심부에 위치한 산이다.

벌판에 돌출한 산이지만 남쪽으로 귀암 절벽이 연결되어 사자바위 부엉이바위, 병풍바위 등 이름을 갖는 기암이 솟아있어 야산이지만 드물고 굳굳하고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다.

봉화산의 원래 이름은 자암산(子庵山)이라도 지적도상에 명기되어 있었는데 1963년 전국 지적측량시 정토원을 일군 선진규 법사가 지방사람들이 부르고 있는 대로 봉화산이라 명기하여 달라고 청원한 것이 그 이후 봉화산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노무현 대통령생가를 방문한 사람들은 필히 봉화산을 오르게 되고 봉화산을 오르면 낮으면서도 높은 산의 위용을 지닌 4방 30리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동쪽의 높은 산 무척산을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금동산, 석용산, 신어산, 분성산, 경운산, 팔만산, 불모산, 장유봉, 신정산, 대암산, 정병산, 천주산, 용지봉, 농바위, 구월산, 작대산, 무령산, 백원산, 천마산, 마금산, 함박산, 종암산, 덕암산, 영취산, 화왕산. 산성산, 청룡산, 만어산, 구천산, 금오산 등 산세를 접하고 있어 이곳 기운을 받으면 “대통령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많은 인물이 나올 수 있는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봉화산을 상징하는 말이 ‘낮지만 높은 산’ 이외에도 ‘골이 많은 산’이란 말도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대통령님께서 전해 주신 말씀인데 워낙 골짜기 골짜기가 깊고 넓어서 여러 개 초등학교가 동시에 소풍와도 서로 만날 수 없을 정도 이었다고 한다.

혹시 정토원의 마애불을 아시나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이 있는데 마애불은 중생을 도와주는 부처로서 오른손은 중생의 두려움을 왼손은 중생의 소원을 빌어준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정토원에서 묘역으로 가는 길 왼편 가파른 벼랑 아래에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이 있고 이 봉화산 마매불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로 당나라 왕후가 밤마다 꿈속에서 어느 청년에게 괴롭힘을 당하자 도통한 스님의 힘을 빌려 그 청년을 바위에 가뒀다고 한다.

그 청년이 바위에 갇혀 석불이 되매 오른손은 중생의 두려움을, 왼손은 소원을 이뤄준다는 전설도 있는데, 마애불 밑 너른 마당은 ‘자은암’ 터로 인도의 허황후가 돌로 만든 배를 타고 아유타국을 떠나 김해에 와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 것을 기념해 지은 4개의 절 가운데 하나로써 터 한쪽에 낮은 포복으로 가야 겨우 들어갈 만한 작은 동굴이 있는데, 봉하마을 어린이들이 아지트로 많이 애용했던 장소이기도 하고 대통령 역시 이 바위를 오르내리며 많은 추억을 쌓았다. 겉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안에는 공간이 제법 넓으며, 예전에는 살쾡이가 살기도 했다고 한다.

마저 부르지 못한 노래 사노곡

   
 
  ▲ 사노곡.  
 
멀리서 그가 부른 ‘상록수’가… 아직 보내지 못한 사람들의 ‘사노곡’  

사자바위에 놓인 국화 한송이.

봉하마을 앞에 다시 도착하니 추모객들의 숫자가 배로 많아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의 집을 들르기 위해 사람들이 빼곡히 줄을 섰다.

추모의 집 앞 너른 마당에는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담긴 대형 걸개 그림이 세워져 있다. 활짝 웃는 노 전 대통령이 오른손을 흔들고 있는 그림이다. 주름진 얼굴이 푸근하다.

멀리서 ‘상록수’ 노래가 들려왔다.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부른 노래였다. 노 전 대통령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노래와 그의 글, 그의 목소리는 남았다.

봉하마을을 찾은 사람들은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애끓는 ‘사노곡’이 대통령의 길 이곳저곳에 구슬프다.

삶과 죽음의 경계 ‘부엉이 바위’

   
 
  ▲ 부엉이 바위.  
 
"부엉이바위’로 이어진 삶과 죽음의 길…방문자들 ‘치유’ 공유
출발 지점 묘역 조성…추모글 1만5천개 ’노무현 정신’ 기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앞둔 21일, 김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묘역 주변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햇볕에 얼굴이 발갛게 그을린 십여명의 인부들이 묘역 주변 마무리 공사에 구슬땀을 쏟았다.

시민들의 추모 글귀가 새겨진 박석(바닥 돌) 만 오천개가 ‘아주 작은 비석’ 주변에 촘촘히 놓이고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시민들의 정성과 예술가의 혼이 담겼다.

박석에 글귀를 직접 새겨 넣은 조각가 윤태중(55)씨는 “자필 박석은 공구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정으로 돌을 깨 글귀를 새겼다”고 말했다.

이 묘역이 ‘대통령의 길’의 시작이다.

대통령의 길’은 지난 16일 개장했다.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귀향한 뒤 자주 거닐었던 길을 지정해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 묘역에서 시작해 봉화산 부엉이 바위를 지나 사자바위, 정토원, 봉화산 숲길, 봉하마을 논둑길 등을 거쳐 노 전 대통령 추모의 집까지 이어지는 5.3 킬로미터 구간이다. 노 전 대통령이 걷던 길에는 어떤 흔적들이 남아 있을까. 이 길을 직접 걸어보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 ‘부엉이 바위’…출발은 슬픔  

   
 
  ▲ 사자바위.  
 
대통령의 길은 ‘슬픔’에서 시작한다. 묘역에서 출발한 길은 곧바로 노 전 대통령이 새처럼 몸을 날려 바위를 때렸던 봉화산 부엉이 바위로 이어진다.

죽은 이의 영혼이 맴도는 곳에는 그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도 맴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슬픔과 마주한다.

“옻나무가 너무 많아. 대통령님이 옻이라도 타면 어떡하나.”

순천에서 남편과 함께 봉하마을을 찾은 한세나(60)씨는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안타까운 듯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몸이 부스러졌던 그 자리에 옻나무가 많은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은 부채감으로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견디지 못한 이들은 원망의 대상을 찾는다. 옻나무도 싫고 바위도 싫다.

마산에서 온 이중식(55)씨는 고개를 들어 육중한 부엉이 바위를 쳐다보더니 혼잣말을 내뱉었다. “저 바위만 없었으면 그렇게 돌아가시지 않았을 텐데.”

이씨에게 ‘무슨 말이냐’고 묻자 “안타까워서 그냥 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렇게 뭐라도 원망해야 미안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으리라.

봉화산 밑에서부터 놓인 200여개의 계단을 오르면 부엉이 바위에 도착한다. 그러나 부엉이 바위는 바라볼 수만 있을 뿐 밟을 수 없다.

울타리가 바위와 사람의 경계를 가른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그의 뒤를 이을까 염려한 통제였다.

사람들은 서성거린다.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곳도 마찬가지다.

아쉬운 이들은 울타리에 국화를 끼워 넣는다. 새로 놓은 국화 옆에는 생기를 잃은 또 다른 국화가 놓여 있다.

어떤 이들은 담배에 불을 붙여 가만히 바닥에 놓고 사라진다. 바람을 탄 꽁초들이 이리 뒹굴다 저리 뒹굴다 부엉이 바위 쪽으로 몸을 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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