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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ㅡ가을에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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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ㅡ가을에 쓰는 편지
  • 편집부
  • 승인 2009.09.19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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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가을에 쓰는 편지

이 행 은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나 그랬듯이 창문을 연다. 베란다 창으로 펼쳐진 잎새들의 넌출거리는 물결을 보기 위함이다. 그 싱그러움을 조금이라도 놓칠세라 이사 온 이래 새시도 안한채 툭 트여 놓았다.

팔손이 이파리 넓은 볼을 호되게 두드리던 비소리도 멎은 지난 여름 어느날. 장마비로 인해 눅눅했던 빨래며 이불들을 가실가실하게 말릴 욕심으로 마음이 바빠졌다.

방 안 먼지를 털어내다가 서랍장 뒤 틈서리로 삐죽이 나온 노트 귀퉁이를 보자 잃었던 보물을 찾은 양 반가웠다. 책을 읽고 난 느낌 짤막한 메모를 담은 나름대로 소중한 노트인데 어쩌다 서랍장 뒤로 넘어갔다. 혼자 힘으로 엄두를 못내다가 아침 운동을 끝내고 들어서는 남편에게 도움을 청했다.

잡다한 장식품들을 내려놓고 덩치 큰 TV를 들어내니 네모반듯한 하얀 먼지가 깔려 유리 색깔이 보이지 않았다. 긴 서랍장을 양쪽으로 잡고 물건을 끄집어 낼 만큼의 여유를 두고 앞으로 당겼다.

다른 몇 가지 소지품들도 언제 들어갔는지 그동안 숨바꼭질 하다가 들킨 것처럼 나타났다. 아기 주먹만한 먼지덩이가 여기저기 뒹굴어 걸레로 여러 번 훔쳐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지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여지고 쌓여 있었구나. 그런데도 손이 닿는 곳 보이고 잡혀지는 곳이 다 인양 쓸고 닦으며 살았다. 걸레질을 할수록 말갛게 되살아나는 장판지의 선명한 노란 색깔 그 빛깔을 보노라니 세월의 뒤안길에 묻어놓은 마음 한자락 자락들이 그리움처럼 피어올랐다.

머리 속에서 떠도는 이런저런 지식만 담고 있었지 지혜가 부족한 나 자신. 언제나 뜨겁거나 아주 차야 한다는 선을 긋고 살았다. 생각과 방법이 나하고 다를 뿐인데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 틀렸다고 단정짓고 몰아내었다.

그럴때 나보다 한 소리 낮추며 한 발 물러 선 얼굴. 아둔하게도 내 곁에서 멀리 떠난 후 떠오르고 알게 된다. 어떤 부분은 답을 알지 못해 비워 두었고 정답이 아닌 것 같아 지워버렸던 자욱들이 빈 칸으로 남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먼지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니!

작년 이맘때 쯤 작은 약속의 의미로 지인이 난 화분을 내게 안겨 주셨다. 따가운 여름 햇살을 피해 창그늘막에서 한 차례 꽃을 틔워 내더니 사랑의 오라줄을 그려내는 잎 새 사이로 또 한 대의 꽃대가 수줍은 듯 자라나 망울을 보듬고 있었다. 간직하지 못하고 쉬이 뱉어버린 말들이 너무 많았구나 싶어 잠시 회한에 잠겼다.

창 너머 바깥에는 아파트 옹벽과 주택 사이 자투리땅에 윗집 할아버지가 심어 놓은 호박 잎사귀가 키 큰 히말라야시다 위로 빛이 바랜 채 걸쳐져 있다.
앞가슴 너른 품을 가진 듯 그 품새마저 푸근하게 와 닿는다. 연초록 가지색 물을 들인 것 같은 난 꽃을 부끄럼 없이 반기기 위해서 이 가을에 나는 용기 있는 편지를 꼭 보내야지.

쉽게 뱉어버린 말들을 사랑과 우정으로 대신 꼭꼭 채우면서.....

 

   
 
     
 

-약력-
*1994년 가톨릭 문학 입선
*1997년 영남 여성 문학 입선
*1998년 문예시대 수필 신인상 수상
*現 부산 가톨릭 문인 협회원
*現 김해 문인 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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