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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온고지신(溫故知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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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온고지신(溫故知新)
  • 안태봉
  • 승인 2012.02.08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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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봉 본지 편집국장>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고 21C 전자시대에 살고 있지만 유독 아날로그만 고집하는가 하면 육필로 쓰는 작가들도 수없이 보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컴퓨터보다는 내가 직접 쓰는 것이 좋고 기계에 의존하지 않으니 그게 더 좋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들을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하지 않는다.

복잡 다양한 스마트폰보다는 걸고 받는 그냥 휴대폰 한 대만 있으면 족하다는 사람들. 어찌 이런 사람들을 구시대 인물이라고 싸잡아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본인은 항시 온고지신의 교훈을 되살려 오늘에 산다. “옛것을 연구하여 거기서 새로운 지식이나 도리를 찾아내는 일”이라고 사전에는 설명하고 있다. 물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다루지 못해도 누구 하나 허물로 삼지 않는다.

올해 안으로 아날로그 TV는 영원히 역사의 뒷전에 묻히고, 그 자리를 디지털이라는 것이 전면에 나선다 하니, 이제부터라도 겸허하게 이를 받아들이고 배워야 한다. 그래야만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사람이 된다. 여기서 온고지신의 교훈 하나를 살펴보자.

중국의 문화를 꽃피운 당나라 때의 일이다. 아시다시피 당태종은 자신의 형 건성을 몰아내고 부친 고조를 협박하여 황제를 찬탈한 인물이다.

그런데 건성 태자에게는 위징이라는 충직한 신하가 있었다. 한 날 위징이 태자에게 “세민 태자가 역모를 꾀하겠습니다. 반드시 죽여 후환이 없게 하십시오”라고 권하자 건성 태자는 “설마 내 동생이 모반을 하랴”라고 말하면서 위징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세민 태자는 젊은 장수들이 주축이 되어 모반을 하여 대궐을 점거하고 모든 상황이 평정되자 그는 당태종에 올랐다.

이때 태종의 참모들 손에 잔당들이 끌려나왔다. 이 속에는 위징도 들어 있었다. 태종이 위징에게 묻는다 “그대가 왜 우리 형제간을 이간시켰느냐”라고 추궁을 하자 신립한 대소 신료들은 이제 위징은 꼼짝없이 죽임을 당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위징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태종에게 말하기를 “폐하 건성 태자께서 신의 말을 들었다면 결코 오늘과 같은 화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며, 앞에 계시는 폐하 또한 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태종은 갑자기 손뼉을 치며 “짐은 그대를 실험했노라, 자네는 자기가 맡은 소임에 충실히 수행하였다. 지금 이 시간부터 짐 옆에서 간언하라”고 칙명을 내리고 위징을 중용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위징은 죽을 때까지 당태종 옆에서 바른말 즉 직언(直言)하는 신하로서 태종의 추앙을 받았다. 직언직필(直言直筆)의 설화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당태종인들 자신의 야심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는 위징을 왜 죽이지 않았겠는가 마는 그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지도자의 자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첨 잘하는 신하는 검을 숨기고 겉으로 미소 짓는 그런 류의 사람이라고 하니 정치나 관리로서 자격을 갖출 수 없는 인물이다 필히 없어져야 한다.

온고지신! 옛것이 없으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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