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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된 역사인식 극복해야 국민통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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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된 역사인식 극복해야 국민통합 가능
  • 정옥자 위원장
  • 승인 2008.09.18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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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옥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일제 강점과 건국 그리고 한국 전쟁. 20세기 대한민국의 치열한 역사는 해석을 둘러싼 첨예한 이념적 갈등을 낳았다.

2008년 지금도 역사 해석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역사를 어떤 시각으로 봐야 갈등과 대립이 아닌 미래의 지도가 될 것인가?

역사에 대한 사실은 그대로 있는데,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동양사회에서는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기 위해 인문학이 중요했다. 그중에서도 역사는 인간들이 살아온 과정을 추적하는 학문이다. 정치와 역사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통론은 정통이냐 비 정통이냐를 따져서 비 정통이면 민심이 등을 돌리는 경향을 보여 국가에서는 정통론이 중요하였다.

사마천의 사기에 근원을 둔 기전체가 동양에서 가장 많이 활용된다. 기사본말체는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모두 설명하는 것으로 강론을 설명하는데 유용하다.

한 가지 특정사건 서술의 강론에 쓰인다. 편년체는 역사를 순서에 따라 설명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예가 조선왕조실록이 있다. 오늘날 시대를 연구하는 자료로 많이 활용된다.

마지막으로 강목체는 성리학적인 역사서술이다. ‘강’은 연사의 큰 흐름이고 ‘목’은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유학중에서도 성리학의 시대여서 역사서술중에도 강목체가 많이 쓰였다.

제국주의 적인 역사학은 무력의 논리로 역사를 보는 것이다. 즉 전쟁 사관으로 볼 수 있다. 모든 관계를 투쟁의 관계로 보고 대외적인 관계, 전쟁위주로 서술하는 것이다. 오늘 날까지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모든 관계는 투쟁의 관계라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 일본의 식민사학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5가지 경향으로 왜곡하였다.

반도적 성격론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결정한 것이다. 나라가 독립적인 상태로 있지 못하고 중국에 지배를 받는 등 의존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나라의 지리, 기후에 사람들에게 많이 영향을 준다. 반도의 단점만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단점을 고치고 장점을 살리는 것이 필요 하다.

사대주의론은 사대주의라는 것을 강자에게 복종하고 아부하는 뜻으로 변형시켰다. 전통시대의 사대주의의 의미는 중국과의 관계로 조공과 사역이 있었다.

조공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대가로 사역품이 있었다. 주고받은 것이 거의 동등하다. 공무역의 형태로 볼 수 있다.

전통시대는 현대의 질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대주의 관계가 존재하였는데 이를 무력의 관계로만 정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셋째로 당쟁론이다. 우리나라가 당쟁을 하다 망했다고 일본은 주장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훈구파는 국가에 공훈을 세운 국파이다.

하지만 후에 기득권을 가지고 안주하는 경향을 보이자 이에 비판세력으로 사림파를 성종이 끌어올리게 된다. 영남학파가 동인, 핵심 인물은 이황 기호학파는 서인으로 대표인물은 이이이다. 이 둘은 서로 사제관계이지만 후에 제자들이 갈등이 심해졌다.

이를 처음부터 이분적인 구조로 보면 안 된다. 후에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나뉜다. 17C엔 양당체제로 일진일퇴를 유지한다. “ 이는 부정부패를 막고 사림이라는 제야세력이 있어서 정국을 이끌어가는 것이 순기능이다 ” 이후 탕평정책은 왕이 구심점이 되어서 모든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붕당은 인제퇴패의 구조로 양당체제는 18C에 무너진다. 비판정치가 사라지고 사회가 안정되자 문화가 꽃핀다. 이것이 지속되다 보니 세도 정치가 된다.

넷째로 문화적 비 독창성론이다. 문화는 삶의 모습이자 방식이다. 전통시대에 중국에서 고급문화를 끊임없이 받아들인다. 일본을 우리나라를 통해 문화를 전파 받는다.

“ 우리가 중국문화를 받아들여 승화시켜서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 우리의 문화적 역량이다. 중국보다 규모는 작아지지만 섬세하게 변화한다.”

조선시대 고유문화창달의 수준은 매우 높다. 서양의 인상주의학파보다 조선시대 학파의 위상이 더 높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겸제 정선, 관아제 조용선, 신사제 서용선 삼제가 우명하다.

신윤복, 장승업, 김흥도는 직업 화가이다. 이 6명을 중심으로 해 진경산수화 진경 민속화가 발달하게 된다. 자기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없이는 이러한 문화가 나올 수 없다.

마지막으로 정체성론은 왕조가 바뀌어도 문화가 계속 정체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원시공동체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 등으로 규정지어 동양사회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이런 발전단계를 거친 국가는 제국주의 국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도 이와 비슷한 발전단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이 빠르게 성장하고 서구 제국주의에 편승하였지만 이러한 단계는 서구에서 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학설이다. 조선에서는 왕조가 바뀌는 것 가체를 혁명으로 볼 수 있다.

근대 사학은 전통사학으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서양사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첫째로 계몽주의 사학이다.

둘째 민족주의 사학이다. 일본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제국주의와 동전의 안팎이다.

단재 신채호는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다.’라 하며 독립운동의 핵심적인물이 된다. 후에 재야사학으로 계승된다. 전두환 대통력시절 붐을 이루기도 한다. 굉장히 애국적이나 극우로 치우쳤다.

다음 사회경제사학을 일본에서 유학을 했던 사람들이 한다. 역사를 물적 기초로 정리한 것이다. 논리적인 의미는 있으나 역사가 물적 기초로만 정리되는 것은 아닌데, 도그마에 빠져 물적 기초로만 정리하였다.

70년대 자생적으로 나타난 민중사학이 있다. 이것이 바로 80년대 신군부에 대한 맹렬한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 된다.

다음으로 실증사학을 일본 유학생들이 한다. 독일 랑케 사학을 일본에서 이식한다는 사명감에 모든 역사는 실증에 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사의 기초는 고증학이다. 역사를 철저하게 실증하는 기초를 세웠지만 식민 사관을 넘어서지 못하여 비판의 대상이 된다.

어떤 사람도 시대를 뛰어넘지 못하였다. 광복 후 대학에 자리 잡아 오늘날 국사를 이끈 사람들이 된다.

1940년대에 신민족주의 사학이 성행한다.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우리의 미래를 연구한다.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버리고 세계 모든 민족의 공존, 공영을 위해 민족주의를 구현하고자 한다.

근현대사를 어떤 관점을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갈등이 있다. 좌편향적인 역사인식은 비판적 역사인식이다.

이는 한 단계로서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쳐 발전에는 소홀히 하고 자학적인 단계까지 갔다는 것은 문제다.

최근 우편향적인 역사적 관점으로 뉴라이트 운동이 나오고 있다. 최근 대안교과서는 현실적인 역사인식이며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합리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개항기 근대사에 대해서 그동안의 업적을 많이 누락시킨다. 또 역사적인 맥락에서 파악을 못하고 있다.

“좌, 우라는 것은 방법론이지 목적일 수 없다. 한쪽으로 편향된 역사인식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정옥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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