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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의 가을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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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의 가을을 보며...
  • 이균성 기자
  • 승인 2008.10.19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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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초겨울의 봉하마을. 지금과는 달리 주인 없는 마을처럼 황량감이 감돈다.  

 

 

 

 

 

 

 

 

 

 

 

 

 

봉하마을에 가을걷이가 시작되었다. 누렇게 고개를 숙인 벼들과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꼬리를 무는 관광객들의 행렬을 보노라면 1년 가까이 봉하마을을 취재하면서 느낀 많은 소회와 보고 들은 더 많은 일들이 기억으로 머리를 스친다.

기자가 본격적으로 봉하마을을 취재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11월부터...
당시 초겨울의 봉하마을은 노 전 대통령의 귀향을 위해 사저 건축공사에 동원된 중장비의 굉음과 흙먼지, 간간히 스치는 시골마을의 찬바람이 전부였다. 청년 노무현이 고시공부 하느라 지었다는 허름한 공부방, 마옥당(摩玉堂)이 있었던 마을 건너편 감나무밭에는 일손이 모자라 수확조차 못한 감들이 그대로 얼어가고 마을은 다가온 겨울처럼 생기마저 잃어 '과연 여기가 대통령의 고향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축 쳐져 있었다. 대통령의 고향동네에 산다는 마을사람들의 자긍심은 보수언론에 골병이 들어 사그러지고 '열 받아 한번 뒤집어 엎고 싶지만 할 말 모두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하는 한갓 농부의 울화' 만이 검은 얼굴에서 언듯언듯 느껴질 뿐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무슨 말이라도 걸어볼라 치면 길을 피하거나 얼굴 조차 마주하지 않은 채 "그런 거 나는 모릅니다"라는 대답만 들려왔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그 때 서울은 물론이고 지방에서 조차 언론이란 문패만 달았다 하면 거의 모든 매체들이 임기말 대통령을 사정 없이 씹고, 있는 펀치, 없는 펀치 다 동원하여 두드려대고 있었으니까.

그 때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던 것이 바로 주간조선의 '노건평씨 골프장' 사건. 그 보도는 시골 촌놈 기자가 봐도 엄청난 내용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뭐가 있긴 있나?" 김해에 사무실이 있으니 20분이면 휭~~하니 봉하마을까지 달려간다. 그 때 처음 둘러본 곳이 봉하마을 저수지 옆에 있는 노건평씨의 텃밭. 소위 골프장이라고 지적된 곳이었다.

골프장이 있느니, 필드에는 다른 사람 눈 때문에 못 나가고 거기서 골프를 친다느니...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그 곳은 사람들의 출입이 가능했다. 들어가는 입구가 지금은 오히려 작은 철문을 달아 놓았지만 당시에는 쇠줄로 걸쳐 놓은 게 전부였다. 터덕터덕 오르니 농막에서 노건평씨가 나왔다. "뭐 하러 왔노". "예. 여기 골프장이 있다고 해서...". "허허, 그래? 봐라. 이기 그 놈들이 말하는 골프장이다".

노건평씨가 가리키는 곳에는 채 100평도 안 되는 땅에 겨울을 맞은 잔디가 노랗게 누워 있었다. "대통령 형이라꼬 뭐 조금만 해도 대문짝만 하게 난리를 치고...나도 묵고 살아야 할꺼 아이가? 이 잔디하고 사슴 키워서 몇 푼 나오는 걸로 사는데...이 잔디가 무슨 골프장이란 말이고? 봐라." 헛소리 하고 있다는 듯 노건평씨는 기자를 바라보고는 추운데 커피나 한잔 하고 가라며 농막안으로 이끌었다. 농기구 보관창고인 듯한 그 곳에서 기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틀은 족히 지난 듯한 냄비에 담긴 먹다 만 김치찌게와 씻지 않은 수저, 그리고 빈 소주병들. "친구들이 찾아오면 묵을 끼 뭐 있나. 소주나 한잔 묵고 말제. 이거는 찍지 마라. 대통령 형이 묵은 안주도 안 치운다꼬 소문나모 우짜노. 허허".

지금도 그 골프장(?)은 지난 겨울 모습 그대로 있다.  봉하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이 꼭 한번은 들러서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그 유명했던 골프장을 한번 보고 가는 것도 좋을텐데...하는 바람을 가져보지만  아직 그 보도를 확인하는  관광객은 별로 없는 것 같다.(마을 옆에 있는 저수지를 끼고 오르막길로 약 150m만 가면 바로 눈앞에 보인다)

지금 새삼스럽게 잠시 지난 취재수첩을 열어보는 것은 아직도 봉하마을에 골프장이 있고 아방궁이 지어졌다는 둥 생뚱맞은 말들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참으로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이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해야 하는 것이 언론의 본분일진대 소설처럼 쓰여진 기사 하나가 아직도 정치권에서는 확인조차 되지 않은 채 확대, 재생산 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까워서이다.

"사저 지하에 아방궁이 있다", "가장 큰 웰빙 숲을 정원으로 가졌다", "봉하마을 꾸미는데 무려 1000억의 국민 세금이 든다" 등등. 시골 돈이 서울 돈보다 몇십배의 가치를 가진 것도 아닐텐데 75억이 어떻게 해서 1000억이 되었을까? 계획했던 사업마저도 김해시의 예산부족으로 제대로 집행이 되지 못 하고 있는 이 지경에...

적어도 김해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고 창출 부가가치가 금년에만도 300억이 넘는다는 봉하마을의 관광지化 사업은 누가 지자체 長이 되건 욕심나는 사업일텐데 왜 중앙정치 마당에서는 그렇게 부풀려지고 왜곡되어 그 가치마저 훼손되어야 할까? 하긴 서울의 그 대단한(?) 언론사 기자들에는 발가락 끝에도 가지 못하는 지방신문의 기자 말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겠냐마는...이래저래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요즘 봉하마을에 들리면 가끔 막걸리로 불콰해진 동네 주민들의 얼굴이 보이고 자신감 넘치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대통령 면전에서 불경(?)스럽게도 "저는 그런 농사 안할랍니다" 라고 오리농사를 반대하던 이기우씨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오리벼를 수확하던 날. 이호철 수석 등 동네 아르바이트꾼들은 낑낑거리며 벼 포대 옮겨주고 가야막걸리 몇잔을 얻어 마셨다.

   
   ▲당시 노건평씨의 농막 내부 모습. 장기 한판에 소주 한잔, 안주는 건빵과 김치찌게였다.

 

 

 

 

 

 

 

 

 

 

 

 

지금 봉하마을에는 지난 겨울에는 없던 연꽃연못도 만들어지고 꽃길도 생기고 볏짚을 얹은 정자(?)도 등장했다. 청와대에서 양복 입고 폼 잡던 비서관들은 햇볕에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로 벼를 추수하고 메뚜기 잡기 체험하는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봉하마을의 상머슴이 되었다. 세상 돌아가는 일은 안중에도 없는 듯 매일 낄낄거리며 무슨 일을 궁리하고 만들어 낸다.

이렇게 그들은 살아가고, 또 그들만의 길을 내어 간다. 이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그들만의 방식이 된 것이다. 그들을 농촌사람으로, 그대로 두자. 뭔 짓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살든 이미 그들은 그들만의 생활을 가졌다. 소박함에서 행복을 찾고 논 일, 밭 일, 마을 가꾸는 것으로 지난날의 영화는 다 땅에 묻고 산다. 봉하마을이 잘 살게됨으로써 그것이 모델이 되어 우리나라 농촌이 발전하게 되는 것이 그들의 꿈인지도 모른다.

누가 그 꿈을 나무랄 것인가? 그 꿈을 누가 뭉갤 것인가? 누가 그 꿈을 빼앗을 것인가? 그 누구에게도 그럴 권한이 없다. 그 꿈은 그들만이 누리는 작은 행복이자 우리 농촌을 바꾸는 아름다운 희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은 그들을 찾아 웃음을 나누고 농사일을 도우며 그들이 꾸는 꿈에 작은 마음이라도 보태는 것이 아닐까? 봉하마을에는 지금 또 내일을 기다리는 밤이 다가오고 있다.

이균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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