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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던 역사마저도 뭉개버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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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던 역사마저도 뭉개버리는가
  • 박경용 컬럼
  • 승인 2007.12.12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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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용  김해문인협회 고문.  
 
지금의 <해반천>을 옛날 김해 토박이들은 <하반내>라 불렀다.

고지도에서도 하반천(河畔川)으로 적혀 있는데 언제 어떤 연유인지는 확실치는 않지만 근래 와서 해반천(海畔川)으로 불리고 있다.

이 물은 삼계에서 내려오는 냇물인데 바다 해(海)를 쓰는 것이 이치에도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지금의 내동은 김해 토박이들은 <소바우>라 불렀다.

쇠바위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철기문화가 앞섰던 가야문화와 연관된 쇠 바위는 가야의 역사성을 말한다.

이걸 근래 와서 소바우의 소를 동물로 생각하여 한문으로 우암(牛岩)이라 하고 초등학교 교명으로도 쓰고 있으니 문제이다.

지금의 연지도 불과 30여 년 전에는 신못 즉 신(神)의 못이었다.

바로 곁의 구지봉에서 김수로왕의 탄생신화를 담은 신을 맞이한다는 영신가인 구지가(龜旨歌)와 깊은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가야의 역사향기가 풍기는 못이다.

여기에 연지라는 너무나 흔하디 흔한 이름을 붙인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금천(金川)부락도 옛날에는 쇠내라 하였다.

이 또한 가야의 철기문화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지금의 불모산(佛母山)도 옛날 가야시대 쇠를 달구던 풀무의 옛말이 불무인데 이렇게 변형된 거라고 한다.

예로부터 선비들이 심신을 단련하며 공부했다는 서재골은 지방마다 있어왔는데 현재 만장대 기슭 서재골 위에 10여 년 전 어떤 사람이 서재골이 서쪽으로 향하는데 비해 남쪽을 향했다며 남재골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조금은 황당한 느낌이다.

김해는 가야문화 재정비사업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여 공사를 하고 있다.

가야문화라는 역사성에 걸맞은 본래의 이름 찾기에도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겨우 20~30년 전에 비해 이렇게 변해 버렸다.

지명은 아니지만 '김해사람 아니면 감옥소가 빈다' , '김해사돈 울산사돈 감옥소에서 만난다'란 말이 있었는데 요즘은 뜸한 것 같다.

이것도 일제 강점기에 김해농민들이 농민운동을 일으켜 '왜놈은 물러가라 우리 농토 돌려다오'라며 저항하다 붙잡혀 가고 울산으로도 번져 대량 투옥된 후 만들어진 것이다.

그 사연은 덮어둔 채 결과만을 갖고 깎아내리는 말만 했으니 얼마나 일제에 순치되었나를 짐작할 수 있다.

외국이나 다른 지방에는 없는 설화도 만들어 관광자원화하는데 엄연히 존재하던 역사마저도 뭉개버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박 경 용
김해문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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