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곳에는 다음과 같은 액자가 걸려있다.
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하나 일지 않고
달이 물밑을 뚫어도
물위에 흔적이 없다.
최인호 씨의 '길 없는 길'이란 소설에 인용된 금강경 송을 읽고 마음에 확 화닿는 게 느낌이 너무 좋아 붓글씨 잘 쓰는 친구에게 써 달래서 아예 머리맡에 걸어 놓았다.
너 나 없이 급물살을 타듯 정신없이 바쁘고 불안정한 일상들...
그 와중에 무언가 소중한 걸 놓치는 건 아닐까 싶은 의구심이 들 때면 나는 위의 선시를 음미하게 되는데 그럴 때면 깊은 산 야심한 선방의 고즈넉한 정경이 떠오른다.
중천에 휘영청 보름달빛이 소리 없이 쏟아져 내리면 자태고운 여인의 저고리 어깨선 같은 초가지붕과 휑뎅그렁한 뜰이 오롯하게 드러나고, 조그만 연못 속엔 또 하나의 달이 환한 자태를 뽐내며 잠겨있는 한 폭의 동양화가 그려진다.
시새워 헤살을 부리는지 미풍이 마당 옆 대나무를 희롱하면 사그락 사그락 잎 새 소리에 가렵다는 듯 가지를 흔들어대고, 달빛에 대 그림자 뜰에 어른거리면 누군가 마당을 빗질하는 것 같은데 하도 은밀하여 쓰는 듯 마는 듯 먼지하나 일지 않고, 어느새 둥근달이 물에 잠겼는데 수면에는 물결하나 일어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여의하다고 노래한 옛 선사의 깊은 통찰과 시심에 감탄하게 된다.
끊임없이 자아를 성찰함으로 참삶의 길을 찾고자하는 구도자가 자연 속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는다하여 어줍쟎게 옛 선승의 글을 논함이 가당치나 할 까 싶지만 어떤 일을 함에 차분하여 서둘음이 없고 무슨 일을 당하여도 마음이 넉넉하여 흔들림이 없는 대덕의 경지를 헤아려볼 수는 있으리라.
하지만 이글을 쓰게 된 까닭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 그리고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이처럼 아름답고 오묘한 자연을 제대로 보고 느끼고 노래하지 못할까봐 그게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요즈음 달은 왜 그리도 을씨년스러운지...
밤하늘 총총한 별과 은하수는 다 어디로 숨었기에 그리도 보기 힘들까.
호젓한 개울가 오솔길에 개똥벌레들, 그걸 쫓던 개구쟁이들 모두 어디로 갔을까.
아무튼지 하나뿐인 지구, 온통 어지럽고 더럽혀진 이 땅을 이제 좀 잘 가꾸어 다음 세대들에게 넘겨주어야 할 무거운 책임이 바로 우리들에게 있는 것을.
사족
수일 전 신문에 부산 금강공원을 유원지로 개발하겠다는 시 계획안에 대한 우려와 김해를 친환경 도시로 개발한다는 바람직한 기사를 본 후에.
온갖 풍물로 넘치는 설 단대목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