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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남의 사생활을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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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남의 사생활을 엿본다
  • 조정이 기자
  • 승인 2008.04.10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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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e야기
나는 매일 남의 사생활을 엿본다 [김인규]

나는 매일 남의 사생활을 엿본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필자의 주변에는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특히 그 대상이 누구나 아는 공인(公人)일 경우에 관심도는 더욱 높아진다. 필자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고 연예인 누구가 누구와 결혼했다든지 혹은 이혼했다든지 아니면 전혀 근거가 없이 유포되는 연예인 결혼설에 관심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필자는 그냥 남이 쓴 일기를 통하여 그 사람의 사생활을 엿보기도 하고 때로는 음미(?)하기도 할 뿐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될 만큼 관음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일기만큼 한 사람의 사생활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요사이 사람들이 쓴 일기도 재미있지만, 필자는 조선시대 사람들이 쓴 일기를 매우 좋아한다. 공식적인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는 당시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심히 보지 않아서 그렇지 ‘일기’가 국보·보물인 경우가 꽤나 많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난중일기(국보 제76호)를 포함하여 보물로 지정된 조선시대 일기만 9종이 된다. 이 가운데 당시 생활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는 일기는 단연 미암일기와 쇄미록일 것이다. 
 미암일기는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유희춘(1513~1577)이 쓴 일기로 선조 즉위년인 1567년부터 선조 10년(1577)까지 약 11년에 걸쳐 당시 조정에서 일어났던 일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반면 쇄미록의 경우 오희문(1539~1631)이라는 선비가 지방에 있다가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지방을 전전하면서 피난생활을 기록하여 당시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들의 처참한 생활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커야 하는데 이들 일기는 도자기나 그림처럼 예술적 가치가 아닌 자료적 가치로 인하여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사례는 각종 기록 자료들, 예를 들면 기록이 적은 조선시대 이전의 건립된 비(碑)들이 자료적 가치로 인하여 지정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미암일기나 쇄미록을 통하여 사람들의 어떠한 사생활을 엿볼 수 있을까. 미암일기와 쇄미록은 모두 번역되어 있어서 누구나 읽어 볼 수 있지만, 특히 미암일기의 경우 그 내용을 관직생활, 살람살이, 나들이, 재산증식, 부부갈등, 노후생활 등으로 재구성한 책이 몇 년 전에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은 적이 있었다.

 이 책은 각 구성 항목만으로도 당시 생활 중심으로 쓴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가운데 ‘부부갈등’은 일기가 아니면 재구성하기 어려운 내용임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해보면, 미암이 해남에 계집종 신분인 첩을 두었는데, 첩의 이름은 방굿덕이었다고 한다. 미암보다는 15살 아래이며 미암이 함경도 종성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첩이 되었다. 이 둘 사이에는 4명의 딸이 있으며, 첩의 역할은 미암이 전라도로 내려오면 옆에서 시중을 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당시 이 첩으로 인하여 부부간에 다투기도 하였다고 한다. 또한 미암이 전라도 감사로 있을 때 33살의 옥경아라는 기생을 좋아했다는 내용도 소개되고 있다.

 쇄미록의 경우에는 당시 지배층의 대표적인 겨울 스포츠인 매사냥의 모습을 상세하게 전해주고 있어 주목된다. 매사냥을 언제 어떤 방법으로 하였는지 그리고 얼마만큼 꿩을 잡았는지에 대해서 일기 곳곳에 기록되어 있어 16세기 매사냥의 구체적인 모습을 알려 주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틈만 나면 일기들을 뒤적이고 있다.
 그리고 비록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묵재 이문건(1495~1567)이 경북 성주에 귀양 가서 쓴 묵재일기도 이들 일기에 못지않다는 점도 부기해 둔다. 필자는 이 일기를 통하여 당시 지방 장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알 수 있었고 이것을 가지고 학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일반인들이 조선시대 일기를 읽기는 상당히 어려운 점이 있다. 현재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국가기록유산 싸이트에 접속하면 지정된 일기들을 볼 수 있지만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필자가 이전에 이 싸이트를 만드는 데에 참여하였는데 한글로 된 내용을 보여줄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워 번역된 내용을 원문과 아울러 소개할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하다가 그만 다른 부서로 옮기는 바람에 더 이상 진척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가는 한글로 번역된 일기를 인터넷을 통하여 집에서도 편안하고 쉽게 볼 날을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오늘도 일기에서 재미있는 내용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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