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 빨리 내려."
갑자기 내지르는 성난 목소리에 부랴부랴 차에서 내렸다. 쉰이 넘었을 것 같은 일본인 부부가 재촉하여 내린 곳에는 하꼬방(판잣집) 같은 10여 개의 방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그 건물이 위안소라는 것을 알 리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와 같은 조선 여인들이 열댓 명 더 있었다. 우리는 반가운 맘에 서로 애기를 나누었다. 나는 그때서야 나같이 속아서 끌려온 조선 여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저들이 왜 이런 전쟁터에 우리 같은 젊은 여자들을 데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 곳에는 나무로 된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나란히 줄을 지어 10여 객 붙어 있었고, 관리인은 한 칸에 여자 한 명씩을 집어 넣었다. 나도 작은 방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방은 딱 한 사람 누울 만한 크기였다. 사방이 막히고 앞쪽에 문 대신 칸막이가 가려져 있었고, 방에는 아무 것도 없이 덩그러니 요 하나만 깔려 있었다. 엉거주춤 요 끝에 앉아 있으려니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무서움에 엄마 생각만 간절하였다.
긴 밤이 지나갔다. 문 밖에는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고, '따당!' 가끔씩 들려오는 총소리에 놀라 우리들은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뭐한다고 우리를 요로 데꼬 왔을까?'
날이 밝았다. 밖에서 수군거리는 일본군들. 갑자기 칸막이가 열리고 누런 군복의 일본군이 무표정으로 들어섰다.
"누구십니꺼?"
그는 내 앞으로 천천히 다가와 군복 윗옷을 벗고 허리의 칼을 풀었다. 나는 공포심에 아무 말도 못하고 올려 보았다. 그는 다짜고짜 바지를 내리더니 겁탈하듯 덤벼들었다. 너무나 무서워 파들파들 떨기만 하였다.
"싫어예! 나가이소!"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어냈지만 나의 외침은 알아듣지도 못할 그의 말에 묻혔다. 나는 더 이상 저항 못하고 꼼짝없이 당했다. 그가 옷을 입고 나가자마자 또 한 명의 일본군이 들어섰다. 이어서 두 명, 세 명...., 연이어 군인들이 들어왔고 제대로 입지도 못한 치마는 피로 물들었다.
밤새 울었다.
'어머이, 내 신세가 이기 뭐꼬? 내가 지금 여 와서 무슨 일을 당한기고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흑흑'
'자고 일어나면 내한테 일어났던 일이 고마 꿈이었으면 좋겄다.'
엄마 생각에, 고향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제 일이 악몽이길 바랐다.
그러나 그 몸서리쳐지는 일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되었다. 매일 군인들이 방 앞에서 자기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섰다. 옆방에도 또 그 옆방에도....
흐르는 눈물은 말라 붙고, 아픈 몸은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고통 앞에 나는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매일 달려드는 군인들에게 매달리기도 하고 관리인에게 몸이 아프다고 호소도 해 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그들은 나의 애원과 고통을 묵살하였다.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 위로 일본 군인들은 군표(외국에서 전쟁을 하는 경우 또는 군대가 점령지에 주둔한 경우, 군대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 할 때 사용하기 위하여 정부 또는 교전단체가 발행하는 특수한 화페)를 들고 덮쳤을 뿐이었다.
옆방에서는 살려달라는 조선말과 함께, 화난 남자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도와 달라는 애원도, 아프다는 호소도 통하지 않았다.
날이 새니까 뭉텅이 밥을 갖다 주었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꿈이었으면 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후회해도 소용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 인간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구나.'
'죽어도 이 짓만은 몬 하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