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대성동고분군 앞 가로등 줄줄이 고장 한옥체험관 화단 3천만 원 상당 조경수 남천 1천여 그루 영남매일 보도 후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7년째 매일 같이 파손되는 엉터리 불량 펜스 모두 철거하라! 구산동 우체국 앞 버스 승강장 열악하고 협소 개선 필요 구산동 공동주택 신축공사장 `비산먼지` 너무 심하다
최근 김해종합뉴스 김해 가야고 출신 수상스키(웨이크보드) 권준엽 선수 금메달 김해 대곡중학교 복싱부 출신 전국체전 동메달 2개 확보 김해동부소방서, 주택용 소방시설 활용 화재 피해 저감 사례 홍보① 김해시, '김해 웹툰 페스티벌' 성료 김해시 고향사랑기부제, 전국체전 찾아 홍보 김해시, 인플루엔자 지자체 무료예방접종 시작 김해시립김영원미술관 문화체전 특별전 ‘발길’ 김해시청소년센터, 중학생(학부모) 위한 진학특강 김해교육지원청, EBS 학습전략설명회 김해문화도시센터, 한중 교류 연 행사 김해서부소방서, 소방공무원부 ‘우수상’ㆍ학생부 ‘장려상’ 수상 홍태용 김해시장, 추향대제 초헌관 추대 김해시, 수질오염사고 합동 방제훈련 김해도시개발공사-문화관광재단, 포토존 설치 김해의생명산업진흥원, '제3회 Station-G IR 데모데이' 성공적 개최 김해의생명산업진흥원, 글로벌 진출 위한 교두보 마련 김해문화도시센터, ‘제2회 김해뒷고기 푸드페스타’ 전국체전과 함께 김해시 농특산물 공동브랜드 ‘가야뜰’ 홍보 김해가야테마파크, 10월 가을밤 버스킹과 함께 `드론 라이트쇼` 장유3동, 웰다잉 심리교육 프로그램 우수성 인정 받아 관동초, 불조심어린이상 수상 김해시 전국체전 경기장 ‘뜨거운 응원 열기로 가득’ 파리올림픽 복싱 동메달리스트 임애지 선수(화순군청), 2회전 진출 김해시체육회 복싱(라이트급) 서민제 선수 준결승 진출 파리올림픽 양궁 3관왕 임시현 선수, 일부 경기에서 금메달 놓쳐 세계랭킹 2위 안세영, 전국체전 결승전 불참 예고 없이 서울행 제105회 전국체육대회, 김해종합운동장에서 화려한 개막 장미란 차관, 김해하키경기장 방문 '578돌 한글날 기념' 김해한글박물관 행사 5000명 방문 김해시, 하반기 사회보장급여 확인조사 실시 김해시, 에이즈 감염인 진료비 지원 사업 확대 김해시, 내년 2월까지 철새도래지 축산차량 출입 통제 김해시 무역사절단, 디트로이트서 1만810만불 수출상담 성과 김해시 문화체전 위한 특별전 개막식 '성료'
행복1%나눔재단 희망캠페인 함께해요 나눔운동 이웃돕기 모임 일동짱구, 50만원 기탁 배후마을 800여 어르신에 건강 밀키트 제공 김해장애인종합복지관, '행복한 한끼 나눔' 행사 김해시 필리핀 다문화가정에 장학금 전달 인덕식품, 떡볶이떡 2760kg 후원 전달식 정아정밀㈜, 김해시에 온누리상품권 기탁
기사 (83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특별기획시리즈“50만 김해 - 근대50년” 100여년 만에 부활한 김해 활천동 특별기획시리즈<12>“50만 김해 - 근대50년” 100여년 만에 부활한 김해 활천동 기획취재는 경상남도 2011년 지역신문발전지원 자유공모사업에 선정된 영남매일이 위 기금으로 취재하여 보도하였다. 역사 깊은 삼정동, 유물 많은 어방동 구심체 역할 톡톡분산성, 흥선대원군 만세불망비, 박위 축성 사적비가 있으며별 보는 천문대, 마을 보는 만장대, 멀리 가는 봉수대가 있다.김해 활천동(동장 최선희)은 1914년 김해부 좌부 활천면을 좌부면으로 합병했다가 좌부면 남역리 일부를 병합하여 좌부면 어방리로 되었으며 1918년 김해부 좌부 활천면이 김해면으로 합병되었다.가 1931년 11월 1일 김해면이 김해읍으로 승격되었고 1 김해근대 50년 | 조유식취재본부장 | 2012-01-17 12:33 특별기획시리즈“50만 김해 - 근대50년” 대성동.구산동.삼계동을 품은 북부동 특별기획시리즈<11>“50만 김해 - 근대50년” 대성동.구산동.삼계동을 품은 북부동 기획취재는 경상남도 2011년 지역신문발전지원 자유공모사업에 선정된 영남매일이 위 기금으로 취재하여 보도하였다. ◆김해시 북부동!김해사람들 외는 다소 생소할 수밖에 없는 동명이다.그도 그를 수밖에 없는 것이 엄연히 법정동인 대성동, 구산동, 삼계동이 더욱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 법정동이 모여 탄생된 것이 북부동이다.북부동의 중심지역은 대성동도 구산동도 삼계동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옛 육군공병학교가 있던 화정마을이 그 중심이다.북부동 신도시가 형성 돼 있는 신도시 전체(해반천 동쪽)가 공병부대가 있던 곳이다.북부동(동장 김해근대 50년 | 조유식취재본부장 | 2012-01-09 15:40 특별기획시리즈“50만 김해 - 근대50년” 서상동, 봉황동이 탄생시킨 회현동 특별기획시리즈<10>“50만 김해 - 근대50년” 서상동, 봉황동이 탄생시킨 회현동 기획취재는 경상남도 2011년 지역신문발전지원 자유공모사업에 선정된 영남매일이 위 기금으로 취재하여 보도하였다. 김해에서 가장 많은 유적이 있는 문화재 동김해시 회현동(동장 노순덕)은 면적 1.14㎢, 세대수 4021, 인구 9327명(남 4,730명-여 4,597명/2011년 12월 3일)이다. 김해시의 중심지에 속하며, 서쪽은 해반천을 경계로 내동·외동이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은 대성동(북부동)과 맞닿아 있고, 동쪽은 동상동·부원동과 행정동 경계를 이루고 있다.김해면이 1931년에 김해읍(邑)으로 승격하였다. 1981년에 김 김해근대 50년 | 조유식취재본부장 | 2012-01-03 08:51 특별기획시리즈“50만 김해 - 근대50년” 옛 김해 읍의 관문 부원동의 자랑 특별기획시리즈<9>“50만 김해 - 근대50년” 옛 김해 읍의 관문 부원동의 자랑 기획취재는 경상남도 2011년 지역신문발전지원 자유공모사업에 선정된 영남매일이 위 기금으로 취재하여 보도하였다. 고조산, 세심지, 남밖다리옛 김해 읍의 관문 부원동의 자랑 김해경제중심지 부원동 다시 뜨고 있다. 김해 부원동(동장 조정희)은 옛 김해군 시절 김해 읍으로 들어오는 첫 동네였다.한때 김해 읍하면 제법 날리던 시절이 있었고 김해의 모든 술꾼, 미모의 여인들과 건달들이 붐비던 곳이기도 했다.읍면 사람들이 이 김해 읍내로 와서 묘령의 여인들과 방석집에 앉 김해근대 50년 | 조유식취재본부장 | 2011-12-28 10:27 특별기획시리즈“50만 김해 - 근대50년” 김해의 큰형님 동상동을 아십니까? 특별기획시리즈<8>“50만 김해 - 근대50년” 김해의 큰형님 동상동을 아십니까? 기획취재는 경상남도 2011년 지역신문발전지원 자유공모사업 기금으로 1차 취재보도에 이어 특별기획취재 시리즈로 자기가 살고 있는 읍면동에 대해 조금이나마 정보를 드리자는 취지로 취재하여 보도하게 되었음을 밝힌다.(장유는 분동 중이라 차후에 보완취재한다.)김해시 동상동(동장 김명희)은 10수년 전까지만 해도 김해시의 제1동이었다.경남도지사나 김해군수, 김해시장이 순방이라도 할라치면 가장 먼저 동상동을 찾을 정도로 동상동은 김해의 큰형님 동으로 대접받았다.한때 김해의 실세 50% 이상이 동상동에 살면서 김해를 좌지우지하기도 했다. 김해근대 50년 | 조유식취재본부장 | 2011-12-19 16:30 특별기획시리즈“50만 김해 - 근대50년” 50만대도시 김해! 무엇이 달라져야하나. 특별기획시리즈<7>“50만 김해 - 근대50년” 50만대도시 김해! 무엇이 달라져야하나. 기획취재는 경상남도 2011년 지역신문발전지원 자유공모사업에 선정된 영남매일이 위 기금으로 취재하여 보도하였다. 김해의 과거사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주변 세력에 대응해 왕을 추대하고 국가를 성립한 것이 바로 수로왕 탄강설화로 가야의 건국 설화이고 오늘의 김해이다.제4의 제국이면서도 역사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김해의 역사에 대해 사학자들과 국문학자들이 수도 없이 연구와 논문 발표를 통해 가락국 시대 가야문화발상지인 김해의 옛 나라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최인호 작가가 쓴 제4의 제국을 비롯해 이종기 박사가 쓴 가락국 김해근대 50년 | 조유식취재본부장 | 2011-11-14 09:38 특별기획시리즈“50만 김해 - 근대50년” 김해시.군 통합 상처뿐인 김해시 탄생 특별기획시리즈<6>“50만 김해 - 근대50년” 김해시.군 통합 상처뿐인 김해시 탄생 기획취재는 경상남도 2011년 지역신문발전지원 자유공모사업에 선정된 영남매일이 위 기금으로 취재하여 보도하였다. 김해시. 군 통합 상처뿐인 김해시 탄생 (50년간 김해와 함께한 정치인 현황)김해읍 김해시 승격이 남긴 것들. 1981년 7월 1일 김해군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되었고 그 후 14년이 지난 1995년 5월 10일 김해시와 김해군이 도농복합형태의 김해시로 통합했다.김해군으로 부터 독립하여 형님보다 더 큰 도시로 변모하던 김해시가 고향인 김해군과 한 식구가 되므로 해서 비로소 김해는 제대로 된 도농복합도시가 된 것이다.하지만 김해근대 50년 | 조유식취재본부장 | 2011-11-05 10:33 특별기획시리즈 “50만 김해 - 근대50년” 50년 곡창지역 김해평야가 사라졌다 특별기획시리즈 <5>“50만 김해 - 근대50년” 50년 곡창지역 김해평야가 사라졌다 기획취재는 경상남도 2011년 지역신문발전지원 자유공모사업에 선정된 영남매일이 위 기금으로 취재하여 보도하였다. 곡창지역 김해평야가 사라졌다.(부산에 편입된 대저읍, 명지. 녹산.가락면) 김해평야 [ 金海平野 ]의 유형과 지명낙동강 하류에 삼각주로 발달된 충적평야(沖積平野). 낙동강은 양산협곡을 벗어나면서 동·서의 2대 분류(分流)로 갈라지는데, 김해평야는 대체로 이곳에서부터 남해에 면한 명지동까지 계속된다.동서의 너비는 김해 시가지의 바로 남쪽에서는 약 12 김해근대 50년 | 조유식취재본부장 | 2011-11-01 14:10 특별기획시리즈 “50만 김해 - 근대50년” 김해군 김해읍, 김해시로 승격 되다 특별기획시리즈 <4>“50만 김해 - 근대50년” 김해군 김해읍, 김해시로 승격 되다 기획취재는 경상남도 2011년 지역신문발전지원 자유공모사업에 선정된 영남매일이 위 기금으로 취재하여 보도하였다. 市 승격 당시 주민의 32%가 상업, 서비스업 등 3차 산업에 종사하고 43개 업체 종사자가 8천 명에 이르고 있었다.5개의 고등학교와 23개 초중학교, 30개의 의료시설이 있었고, 김해시가 허가한 접객업소는 81년까지 200여 개 였다.김해시 승격 이후 21만 평의(부원동, 봉황동) 구획정리사업 등에 1백억 원의 예산을 들여 시공하기도 했다.그러나 초창기 김해시의 세입은 12억 원인데 반해 세출은 30억 원, 재정자립도 김해근대 50년 | 조유식취재본부장 | 2011-10-25 10:14 특별기획시리즈 “50만 김해 - 근대50년” 50년 후 오늘의 김해와 생활변천사 특별기획시리즈 <3>“50만 김해 - 근대50년” 50년 후 오늘의 김해와 생활변천사 기획취재는 경상남도 2011년 지역신문발전지원 자유공모사업에 선정된 영남매일이 위 기금으로 취재하여 보도하였다. 50년 후 오늘의 김해와 생활변천사 60년대 당시 김해군청 소재지는 김해군 김해읍 서상동 27의5번지이며, 방위로는 동단: 대저면. 대동면 동경128°53′ 동서7.4km 이며 서단: 장유면.진례면 진영읍. 남단 :가락면 명지면 녹산면. 북단: 상동면 생림면 이북면 북위53°14′ 동북28km 626.04km2이다. 년도별 가구 및 인구현황을 보면 1966년도에는 김해근대 50년 | 조유식취재본부장 | 2011-10-17 16:28 특별기획시리즈 “50만 김해 - 근대50년” 50년 전 김해의 면적과 인구 생활양식 특별기획시리즈 <2>“50만 김해 - 근대50년” 50년 전 김해의 면적과 인구 생활양식 기획취재는 경상남도 2011년 지역신문발전지원 자유공모사업에 선정된 영남매일이 위 기금으로 취재하여 보도하였다. 1981년 7월 1일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해 김해군 1개 읍 9개 면과 김해시로 분할, 1995년 5월 10일 도농통합에 따라 김해군과 김해시가 통합되어 새로운 김해시대 열어김해평야는 우리나라의 주요 곡창지대 하나이며, 비닐하우스 농사의 본고장으로 우리나라 최초 비닐하우스 집단 농업지역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다녀갈 정도로 비닐하우스 농법은 전국에 모델이 되기도 했으며 토마토·딸기·오이·배추·꽃 등의 재배가 매우 활발 김해근대 50년 | 조유식취재본부장 | 2011-10-10 15:49 특별기획시리즈 “50만 김해 - 근대50년”김해의 역사와 배경 가락국 건국과 김수로왕 특별기획시리즈 <1>“50만 김해 - 근대50년”김해의 역사와 배경 가락국 건국과 김수로왕 기획취재는 경상남도 2011년 지역신문발전지원 자유공모사업에 선정된 영남매일이 위 기금으로 취재하여 보도하였다. ▲ 취재 및 보도일정★취재기간 : 9월15~10월15일(1개월)★취재지역 : 부산 강서구 . 진해. 김해 일원★취재내용 및 보도기간 : 10월5~11월09일 (7회 연재)1회(10월5일) 김해의 역사와 배경(가락국 건국과 김수로왕)2회(10월12일) 50년 전 김해의 면적과 인구 생활양식(1960년대)3회(10월19일) 50년 후 오늘의 김해면적과 인구 생활양식(2011)4회(10월26일) 김해군 김해읍, 김해시로 승격 김해근대 50년 | 조유식취재본부장 | 2011-10-05 10:45 김해 남산의 분노-12- 김해 남산 위령대재가 봉행되기까지 2013년 4월 2일 영남매일 보도김해 수호산 남산 주인 500여 공동묘지 영령께 용서를 빌고 사죄오늘의 필자가 있기까지 수없는 가르침을 주신 화엄 선사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해를 걱정하셨고 김해의 지도자와 사업가 사회지도자들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우려를 하기도 했다.문안인사차 찾아오는 지역인사들에게 당부하기를 김해의 발전과 안정을 위해 잘려나간 남산 용의 머리 자리인 김해시청 자리에서 남산과 공동묘지 넋을 위령하는 정성을 담은 위령재를 올려주면 좋겠다고 당부하셨다.자네들이 제사를 잘 지내주면 그 공덕으로 명예도, 재력도, 건 김해근대 50년 | 경상도촌놈조유식 | 2011-10-04 12:04 김해 남산의 분노-11- 남산과 무연고 영령 30여 년만에 달랜다. 2013년 3월 24일 영남매일 보도필자가 김해의 수호 산이었던 남산이 파헤쳐지며 잘려나가고 묘지들이 사라지고 난 이후부터 김해의 불행은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수차 언급한 적이 있다.시장, 국회의원, 도의원, 교육의원, 시의원, 상공회의소 회장 등 김해를 대표하는 정치인들과 행정수장 그리고 경제수장까지 대다수가 그 불행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모습을 30여 년 동안 지켜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걱정을 많이 했다.필자가 1978년 김해불교청년회 회장에 취임하여 16년 동안 재임하는 동안 정부로부터 김해시에 단 한 명 선정하는 국가 김해근대 50년 | 경상도촌놈 조유식 | 2011-10-04 12:03 김해 남산의 분노-10- 추풍낙엽 된 역대 수장들 2013년 3월 18일 영남매일 보도구획정리사업으로 떼돈을 벌었다는 토호세력들은 공동묘지를 들어내고 파헤쳐진 남산 위에 김해시 청사를 옮겨왔다. 그리고 의회청사도 함께 신축되었으며 김해상공회의소도 잘려나간 남산 위에 신축되었다.모두가 김해 시세 확충에 꼭 필요하다고 하여 이전 신축된 청사지만, 입주 후 수많은 시청 간부들의 의문의 죽음 그리고 수장들의 좌천과 구속 병고 사망이 이어졌다.다른 지자체의 군수, 구청장, 시장을 지낸 인사들은 줄줄이 정부기관이나 국회의원, 도지사 등으로 보다 더 높은 곳으로 비상했지만 유독시리 김해시장을 김해근대 50년 | 경상도촌놈 조유식 | 2011-10-04 12:02 김해 남산의 분노-8- 공공기관 이전 및 부지불하로 떼 돈 번 유지들 2013년 2월 22일 영남매일 보도1977년부터 토호세력들은 당시 김해읍 서상동에 있던 김해읍사무소(시 승격 대비)- 김해경찰서-김해등기소-김해보건소-시외버스정류장 등을 부원동 봉황동으로 이전하고 이전된 자리에 새로운 문화시설 또는 주민편의시설을 신축하여 김해시 승격을 대비하고 시세 확충을 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행정기관 및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각 기관장과 유지들을 비롯한 주민들은 김해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그들의 계획에 박수를 치며 환영하고 지지해주었다. 특히 구 김해읍 중심상업 지역이었던 서상동과 동상동 주민 김해근대 50년 | 경상도촌놈 조유식 | 2011-10-04 12:01 김해 남산의 분노-7- 김해 도시발전 막은 도시개발사업 1977년부터 김해의 실세들이 부원동, 봉황동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추진하기로 하고 조합을 결성했다. 이 조합은 결성 총회에서 조합장으로 지금은 고인이 된 류 모 씨를 선출하고 본격적으로 구획정리사업에 들어갔다.77년 당시의 김해읍 인구가 6만 명을 넘어서고 있어 읍이 시로 승격된다는 것이 기정사실화 돼 있었다. 김해군 인구 전체의 41%가 김해읍에서 생활할 정도로 김해읍은 도시로서의 기반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행정구역도 진주시 기준의 4과 13계와 4개 출장소를 설치하여 시 승격을 대비했으며 주민 33%가 상업서비스 등 46개 3차 김해근대 50년 | 경상도촌놈 조유식 | 2011-10-04 12:00 김해 남산의 분노-6- 김해읍 부원·봉황 토지구획정리사업 실상 필자가 김해에 정착한 그 시절은 김해군 김해읍, 대저읍, 진영읍 등이 김해군의 중심이 되고 있었다.김해평야의 옥토에서 각종 농작을 하는 농민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들 3개 읍은 대체적으로 농사보다는 상업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군민으로서 출입께나 하는 지역정치인들과 자칭 유지들은 당연히 이들 3개 읍 번화가를 누비기도 했다.그중에서도 김해읍(지금의 김해시 동지역)은 군청과 경찰서 읍사무소를 비롯한 행정기관들이 몰려 있다 보니 김해군을 대표하는 지역유지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터를 잡고 생활했다.김해군의 유지들이 타 지 김해근대 50년 | 경상도촌놈 조유식 | 2011-10-04 12:00 김해 남산의 분노-5- 활천고개는 더 깊이 파내고, 구지봉은 복원했다. 2013년 1월 28일 영남매일 보도필자가 이 코너를 통해 열거하고 있는 김해 남산의 분노 시리즈에 대해 일부 시민들이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그분들의 주장은 필자의 주장이 일리는 있지만, 엄격하게 본다면 전직 시장들과 국회의원, 국회의원 출마자들 그리고 의회의장 부의장, 상공회의소 회장 등이 정직하지 않고 각종 비리를 저질러 빚어진 그들의 불행으로 사필귀정이지 남산의 분노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필자도 그분들의 주장에 공감한다. 남산이 아무리 분노한다 해도 그들이 공복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지만 안 했다면 최악의 불행은 닥치지 않 김해근대 50년 | 경상도촌놈 조유식 | 2011-10-04 11:59 김해 남산의 분노-4- ‘5년간 前 시장, 국회의원, 의회의장, 상의회장 몰락’ 2013년 1월 22일 영남매일 보도필자가 이 코너를 통해 2008년 8월부터 3차례에 걸쳐 남산의 분노를 기고하면서 이곳 기관장들과 지역지도자들의 비운이 계속될 것이라는 예지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무식쟁이 이 촌놈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오히려 필자와 함께 향토문화연구와 문화 발굴, 복원, 보존 운동에 헌신해오면서 김해 남산을 비롯한 김해 도시를 망친 5명의 김해 핵심 인사를 지칭하여 김해 5적이라며 강력히 비판했던 당시 김종간 향토사학자도 김해시장에 당선되어 가장 먼저 남산을 더 망가뜨리는데 앞장서기도 했다.그 김해근대 50년 | 경상도 촌놈 조유식 | 2011-10-04 11:58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