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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를 대표하는 9경(볼거리)- 9경 분산(천문대) 전경 및 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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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를 대표하는 9경(볼거리)- 9경 분산(천문대) 전경 및 운무
  • 특별 취재팀
  • 승인 2015.03.25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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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관광도시 김해`
 `김해를 대표하는 9경(볼거리), 9미(먹을거리),
 `9품(살거리), 9길(걷고 싶은 길)을 소개합니다.

분산성은 외침을 막기 위해 축조된 산성으로 축조 방법으로 볼 때 가야시대 때 세워진 산성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세월의 흐름에 산성의 일부가 무너지고 부서져, 분산성을 다시 축조하고 모양새를 다듬었다. 선조들의 지속적인 분산성 수리를 통해 임진왜란때는 왜구를 막어내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 조선후기에는 분산성을 지키고 축조한 사람들을 기리는 비석을 세워 그들의 공로를 기리고 있다.

 

 

그러던 분산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가야의 역사를 주제로 한 테마파크가 들어서면서 역사를 체험하고 즐기는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별을 관측하는 천문대를 통해 21세기 분산성은 김해를 지키고 바라고 즐기는 공간이 되고 있다.

외침을 막아낸 분산성

분산성은 고려 우왕 3년(1377년) 박 위 부사가 왜구를 막기 위해 축성한 뒤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던 것을 고종 8년(1871년) 정현석 부사가 개축한 것이다.

그러나 성의 기초 선정 방법이 삼국시대 산성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소위 테뫼식을 따르고 있음을 볼 때 최초 축성연대는 가야시대일 것으로 추정된다.

 

 

 
   
산꼭대기에 있는 평탄한 지형을 둘러서 그 주위에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룬 성벽으로 수직에 가까운 석벽은 높이가 약 3∼4m인데 무너진 부분이 적지 않다.

이 곳에 세워진 ‘정국군박공위축성사적비(靖國君朴公葳築城事蹟碑)’에 의하면 이 산성은 조선 초기에 박위(朴葳)가 고산성(古山城)에 의거하여 수축한 뒤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1871년(고종 8) 다시 현재의 성벽으로 고쳤다고 한다.

성기(城基)의 선정법은 삼국시대 산성의 주류를 이룬 테뫼식[鉢卷式]을 따른 점으로 미루어 그 시축(始築) 연대가 삼국시대임을 추측할 수 있다.

 

김해시내, 김해평야와 낙동강, 그리고 남해바다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분산의 정상부에 띠를 두르듯이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현재는 시내 쪽 경사면에 약 900m 가량의 성벽이 남아 있고 성안에는 남북의 2개 문지와 서편의 암문, 우물지 등 몇 개의 건물터도 남아 있다. 

성곽의 길이는 총 929m, 평균 폭은 약 8m이다. 산성 안에는 해은사가 있다.

해은사는 가락국의 허왕후가 바다에서 왔던 것을 기리는 뜻에서 세워졌다고 하며, 조선시대에 그려진 수로왕과 허왕후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에 승병이 주둔 하였다고 전한다. 

분산성의 또다른 이름 만장대 ​김해시민들에게는 '만장대'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데, 만장대는 조선시대에 대원군이 왜적을 물리치는 전진기지로 '만길이나 되는 높은 대"라는 칭호를 내렸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1999년에 복원된 봉수대 뒷편의 바위에는 만장대라 쓴 대원군의 친필과 동장이 새겨져있다

알을 품은 형상의 분산 천문대

 

 
   

가야의 땅을 상징하듯 천문대의 외관은 김수로왕이 태어난 알을 상징하듯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김해천문대는 밀레니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김해시에서 지어 2002년 2월 1일 문을 열었다.

외관은 김수로왕이 태어난 알을 상징하듯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제1관측실, 제2관측실, 보조관측실 등 3개의 관측실과 전시실, 천체투영실을 갖추었다.

김해시내와 가야컨트리클럽을 잇는 도로에서 구절양장의 포장도로를 한참 올라가야 천문대를 만날 수 있는데 야간 천체관측에 방해를 받지 않도록 주차장에서 다소 멀리 떨어져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10분 정도 비탈길을 올라가는 수고를 들여야만 한다.

아이들과 함께 방학동안 체험교육을 진행한다면 이곳도 함께 들르자.

가야국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탄생설화에 나오는 구지봉, 수로왕비릉이 김해시내 중심부에 있다. 구지봉과 수로왕비릉 사이에 난 찻길은 일제강점기 때 뚫린 것이다.

일본인들이 거북의 목에 해당하는 부분에 고의로 길을 내 역사의 맥을 훼손한 것이라는 말이 전해온다.

천문대로 향하기 전 낮 시간대에 김해에 도착했다면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을 답사하는 것이 필수코스이다. 모두 시내에 있는데다 주차장을 잘 갖췄다.

특히 수로왕릉의 영정각에 가면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영정을 볼 수 있으므로 놓치지 말자.

낙동강 주변의 넓은 삼각주 평야인 김해평야는 호남평야와 더불어 농업이 발달한 우리나라의 곡창 지대이다.

김해시내를 한 눈에 굽어보기에 좋은 분성산은 높이가 382m에 지나지 않는 야산이지만 평야지대에 우뚝 솟은 산이라 천문대가 자리잡기에는 좋은 조건을 지녔다.

사랑의 기적을 이루게 해준 별자리 이야기(천문대)

 

 
   

김해는 2천여 년 전 가야문화가 찬란하게 꽃피었던 땅이다. 그곳에 ‘김해천문대’가 있다.

김해 시내 수로왕릉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분성산이 솟아있고 그 산 정상에 은백색의 알 형상을 한 김해천문대가 자리를 잡았다.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문을 여는 김해천문대. 사람들은 제1, 제2관측실과 보조관측실에서 달과 별을 찾는 재미에 푹 빠진다. 어른들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별과 달을 바라보며 추억에 젖고 어린이들은 우주를 향한 꿈을 키워나간다.

천문대 야외에서 내려다보는 김해 시내의 야경 또한 은하수처럼 황홀하기만 하다. 천문대 방문은 아무래도 밤 시간이 적당한 시간대이므로 낮에는 수로왕릉과 수로왕비릉, 국립김해박물관과 대성동고분박물관 등 문화유적과 박물관 기행을 즐기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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